손끝으로 전하는 마음, 도서출판 점자 신혜령 팀장
2023.03.03

admin

[CHANGEMAKERS] 도서출판 점자 신혜령 팀장
Text | Kyuhwan Jeong
Photography | Hwakyung Kim

 

사람이 하는 일은, 보통 사람을 위한 일이지🧑‍🤝‍🧑 하지만 기술이 발달할수록,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는지 잃어버리기도 해 😢 여기, 정말 사람을 위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

 

바로 점자를 다루는 일이야. 점자를 읽는 것은 사람이고, 그 점자를 교정하는 것도 누군가 해야만 하는 일이지👏 글자를 시각장애인🧑‍🦯이 읽을 수 있도록 점자로 바꾸는 일을 ‘점역’이라고 해. 그 ‘점자’에 있을 수 있는 점자 규정 오류‧오탈자를 바로잡는 일이 바로 ‘점자 교정’이야. 

 

우리가 끊임없이 읽고 공부하며 성장하는 것처럼, 장애의 유무를 떠나서 더 멀리, 내가 바라는 더 좋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누구에게나 ‘문자📜’가 있어야겠지? 이 순간에도 새로운 정보는 계속 생겨나고, 문자를 통해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고 있으니까✍️

 

그 일을 하는 사람은 수수하지만 굉장할 거라는 느낌이 딱! 왔어😲  사회적기업 ‘도서출판 점자’의 신혜령 팀장님은 그 누구도 정보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2013년부터, 10년간 교정팀에서 근무하고 있대👍

 

손끝으로✋ 마음을 주고받는 인터뷰. 지금 바로 시작할게!

 

도서출판점자 신혜령 팀장님이 옥상정원에서 두 손을 모으고 앉아 환하게 웃고 있다.

 

안녕하세요!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도서출판 점자에서 교정팀의 팀장을 맡고 있는 신혜령이라고 합니다.

 

점자 교정은 어떤 일인가요?

시각장애인을 위한 책, 간행물, 지도뿐만 아니라 점자가 들어가는 모든 제품의 교정을 봅니다. 점자가 알맞은 높이와 적절한 간격으로 뚜렷하게 들어가 있는지, 점형이 눌리지 않고 찌그러지진 않았는지, 점자 규정에 맞게 자리 잡았는지, 시각장애인분들이 읽을 때 오독의 여지는 없는지 등을 판단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두꺼운 책 위에 점자를 읽는 손이 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콘텐츠 제작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해요.

출판사에서 제작 의뢰를 받으면 먼저 점역팀으로 넘어가요. 점역팀장님이 출력물의 종이 크기, 디자인 등을 감안해 원고 내용을 편집하고, 점역 프로그램을 통해 교정사가 읽을 수 있는 점자 파일로 만들어주어요.

 

이때 한글 문서도 같이 받아요. 점자와 한글, 두 파일을 바탕으로 점자 규정에 맞게 점역이 잘 이루어졌는지 확인합니다. 조사가 틀렸다든가, 문맥상 단어나 문장이 적절치 않다든가, 문장의 끝에 물음표 혹은 마침표 등이 빠졌다든가 등, 오탈자를 잡아내요.

 

점자정보단말기(한소네)와 그 위에 작업하고 있는 두 손.

 

집중이 필요한 일일 것 같아요😅 업무에 사용하는 이 기기는 무엇인가요?

정식 명칭은 <점자정보단말기>인데, 간단하게 ‘한소네’라고 불러요. 점자가 출력되는 컴퓨터라고 보시면 돼요. 이 안에 제가 교정을 보는 파일들이 잔뜩 들어 있습니다. 기기 하단 부분에 점자가 출력돼요. 그 점자셀을 손으로 촉지하며 교정을 보는 거죠. 물론 한글 문서도 동시에 확인하며 이루어집니다.

 

점자를 예리하게 교열하는 팀장님만의 기준이 궁금해요🧐

당연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맞춤법을 꼭 지키려고 해요. 어릴 적 받아쓰기 시험에서 책에서 본 단어와 문장이 나왔는데, 저는 책이 당연히 맞을 거라고 생각하고 자신 있게 답을 적었죠. 그런데 충격적이게도, 틀렸던 거예요. 알고 보니 책에 오타가 나 있었던 거죠. 그때의 억울했던 기분이 지금도 생생해요. 

 

그래서 점자책을 만들 때 오탈자 내지 말자, 만약 원본에 오타 있다면 고쳐서 제작하자는 원칙을 세웠어요. 누군가 보고 잘못된 맞춤법을 익히면 어쩌나 싶어요. 시각장애인들에게 점자의 정확도가 중요하다고 깨닫는 계기가 됐습니다.

 

도서출판 점자 신혜령 팀장님이 서울사랑 소식지를 표지 점자를 읽고 있다.

 

일하면서 가장 뿌듯한 점🙌은 무엇인가요?

번역자나, 옮긴이의 이름은 책에 쓰여 있잖아요. 하지만 점자책은 점역사 및 교정사의 이름이 표기되지 않아요. 그렇지만 점자책이 잘 나온 건 의뢰하시는 분들이 바로 알아봐주세요.

 

원고를 급하게 쓰다 보면 오탈자라든가 형식에 맞지 않는 문장들이 종종 생깁니다. 교정을 끝낸 뒤 의뢰하신 분께 이런 사항들을 수정했다고 말씀드리면, 꼼꼼하게 봐줘서 고맙다고 말씀해주세요. 그럴 때 ‘내 일을 알아주시네’ 싶어 활력이 솟고, 그게 일의 원동력이 되기도 해요.

 

어린이 도서와 책 내지에 스티커로 붙여 점자로 함께 볼 수있는 점자 스티커.

 

더 나은 점자 콘텐츠를 위한 직업인으로서 고민도 있나요?

점자와 묵자(한글)가 함께 들어 있는 점묵자 혼용 리플릿, 간행물 등은 점자뿐 아니라 묵자 디자인도 동시에 고려해야 합니다. 종이 크기와 점자의 부피가 서로 맞지 않으면, 원고를 줄이고 축약하는 작업이 필요해요.

 

그러다 보면 본의 아니게 점자가 한 단어나 대명사도, 윗줄과 아랫줄로 나뉘어 시각장애인 입장에서 가독성이 떨어져 아쉬울 때가 있습니다. 또한 들어오는 작업은 많은데, 점자도서 제작에 시간이 오래 걸려, 쫓기듯 작업하게 될 때가 많아요. 물론 초조함에 서두르다 오탈자를 놓치면 대형 사고라서 ‘꼼꼼하게’를 되뇌며 작업합니다.

 

점자가 새겨져 있는 한국 지도가 책상 위에 놓여있다.

 

시각장애인👩‍🦯에게 ‘점자’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요.

점자는 익히기 쉬운 글자는 아닙니다. 1점에서 6점까지 여섯 개의 점으로 이루어진 점자 글자의 번호를 암기하는 것도, 손끝으로 촉지하는 것도 어렵고, 읽고 쓰기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점자를 꺼리는 분들, 익히기 망설이는 시각장애인분들도 있어요. 저도 어릴 때는 그랬습니다. 하지만 점자를 읽고 쓴다는 건,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받아들이겠다는 마음가짐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해요. 

 

화면낭독 프로그램인 스크린리더나 QR코드 등 음성 지원을 통한 정보도 물론 좋습니다만, 그렇다고 점자를 배우는 것을 소홀히 하면, 정보를 받아들이고 접하는 환경이 협소해져요.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세상이 좁아진다는 의미도 될 거고요. 점자는 ‘흰지팡이’처럼 기본적인 자립의 표현이기에 너무 멀리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도서출판 점자 입구에 붙어있는 팻말 점자와 묵자가 모두 적혀있다. <도서출판 점자 415호>

 

10년 정도 근무하셨는데 사회의 변화🙌가 느껴지나요?

점자에 대한 관심이나 인식이 많이 좋아져서 기쁘지만, 정말 형식적으로 제작된 점자를 접할 때마다 ‘아이고!’ 하는 안타까운 감탄사가 나와요. 어떤 건물의 엘리베이터 버튼에 찍힌 점자는 너무 약해서 가독성이 낮고, 어떤 유명 관광지의 점자 안내 지도는 관리 소홀로 점자가 훼손되어 ‘고향’이 ‘고ㅎ ㅇ’이 된 사례도 봤습니다. 

 

샴푸와 린스, 로션과 스킨, 컵라면과 용기 등 점자가 들어간 생필품이 늘어서 세상 좋아졌다 싶기도 하지만, 또 커피를 포함한 음료수 캔엔 아직도 ‘음료’라고만 표기된 것을 보면, 아직 멀었구나 싶기도 해요. 음료 중에서 그나마 식혜는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어요.

 

천공 점자 프린터기가 나란히 놓여있는 모습

 

피부로 느끼기에, 점자가 더 필요한 곳은 어디일까요?🤔

박물관이나 미술관, 식물원 등 문화 현장에 점자가 구비되었으면 합니다. 점자 도록을 읽으면서 작품 및 유물을 시각화하며 관람을 할 수 있게, 또 팻말에 점자로 식물명 정도라도 알 수 있게끔요. 동행한 비시각장애인 일행에게 설명을 듣곤 하지만, 글자가 너무 작아서 안 보인다는 경우도 적지 않거든요. 

 

그리고 다양한 생필품에 점자가 들어가길 바랍니다. 저는 점자 라벨을 셀프로 제작해서 보일러나 전자레인지 스위치, 상비약 등에 붙여놓고 사용하는데요. 처음부터 제품을 만들 때 시각장애인들의 편의성을 고려해서 점자도 같이 표시한다면 괜찮지 않을까 합니다.

 

팀장님의 점자를 향한 애정❤️‍🔥의 이유가 궁금해요.

무엇보다 책을 좋아해요. 책과 점자를 통해서 세상을 접하고,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되고, 만나본 적도 없는 누군가의 생각이나 마음을 안다는 것 자체가 즐겁고 흥미로워서 계속 점자 교정 일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손끝으로 읽는 국정 책의 내지. 점자와 묵자가 동시에 적혀있는 책. 손끝으로 그 책을 읽는 손.

 

책📖을 좋아하는 만큼, 글로 소통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 같아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행하는 <손끝으로 읽는 국정>이란 월간지에 인터뷰 기사 <사람의 향기>를 맡아서 글을 쓰고 있어요. 사회적기업가분들이나, 체육계, 문학계, 법조계, 음악 분야 등 각계각층에서 활동하는 장애인분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글로 풀어냅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잘 써줘서 고맙다며, 함께 이 사회를 아름답게 만들자는 피드백을 받을 때 보람을 느낍니다. 또 동화구연을 통한 장애인 인식개선 프로그램도 간혹 진행하고, 개인 SNS에 교정본 도서의 서평도 올리며 사람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습니다.

 

옥상정원에서 팔꿈치를 테이블에 기대고 두손은 깍지를 끼고 카메라쪽으로 얼굴을 돌려 아주 환하게 미소 짓고 있다. 안경테의 색과 입술색 니트색이 비슷한 자주빛이다. 머리에는 니트소재의 부드러운 소재의 머리핀이 있다.

 

끝으로, ‘점자’를 한 단어로 정의해주세요❗

글쎄요,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말이 있고, 점자가 제 생계 수단이니 개인적으로는 ‘밥줄’이란 말이 먼저 떠오르네요. 또 한편으로는 ‘이정표’라는 단어도 생각나요. 낯선 장소, 새로운 거리에서 점자를 보면 갑자기 그곳이 무척 친근하게 다가오거든요. 특히 지하철에서 헤매다가 어느 순간 손에 점자가 느껴지면 그렇게 반갑고 안심이 될 수가 없어요.

 

새가 비상하기 위해서는 발을 딛고 도약할 한 줌의 작은 땅이라도 필요합니다. 점자는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작디작지만 날아오르기 위해, 스스로 자립하기 위해 필요한 ‘도약점’이요.

 

도서출판 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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